TELETEXT

TELETEXT 텔레텍스트

스위스 취리히의 Museum für Gestaltung 그래픽 소장품관에서 방대한 프루티거(Frutiger) 아카이브를 조사하던 중, 맥스이미지는 *[Caractères TVP / Teletext]*라는 수수께끼 같은 자료 뭉치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이 폴더에는 16×16 복사본 그리드에 손으로 픽셀 글자를 그린 방대한 수량의 도안들이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 쓰인 매트릭스는 가로 세로 비율이 1:2로 이례적으로 세로가 좁은 형태였습니다. 폴더 안에는 이러한 픽셀 글자의 광학적 보정 테스트, 대체 글리프, 심지어 화면 발광 효과를 시뮬레이션하려는 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가 있었으며, 모든 도안에는 예외 없이 꼼꼼하게 AF라는 프루티거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장인 프루티거의 품질 관리 도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이 스크린 전용 서체는 1974년 개항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의 새 내부 시스템을 위해 1979년경 프랑스 전자회사 **톰슨-CSF(Thomson-CSF)**가 의뢰한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공항은 1970년에 프루티거가 디자인한 주요 간판용 서체인 **알파벳 루아시(Alphabet Roissy)**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는 이후 “프루티거(Frutiger)” 서체로 발전하게 됩니다. 알파벳 루아시는 가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체공학적 특성과 개방형 획 구조를 지닌 휴머니스트 서체였습니다. 반면 톰슨은 내부 TV 시스템에서 출·도착 정보를 표시할 상대적으로 작은 CRT 모니터에 맞는 서체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프루티거는 섬세한 픽셀화 기법을 활용해 Caractères TVP를 디자인했으며, 획 사이에 라이트 트랩(light traps)을 두어 글자 형태에 따뜻함과 휴머니스트 특성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맥스이미지는 이렇듯 해상도가 낮은 픽셀 서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 오히려 프루티거의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낮은 해상도의 CRT 화면용 그리드라는 기술적 제약과 휴머니스트적 접근법은 서로 어긋났지만, 프루티거는 기술에 구애받기보다 기품 있는 하이브리드, 즉 휴머니스트 픽셀 폰트를 창조해냈고 그 디테일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멀리서 보면 개방형 획 구조가 뛰어난 가독성을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픽셀 형태의 작은 슬래브(slab)나 물방울 모양의 마감 처리를 통해 화면에 번짐(screen bleed)을 방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또한 뾰족한 각을 지닌 글자에는 분명한 라이트 트랩을 넣어 작은 크기에서는 선명함을, 큰 크기에서는 강렬한 그래픽 효과를 자아냅니다. 프루티거는 이처럼 기술적 난제를 뛰어난 작품으로 해결해냈지만, 해당 픽셀 서체는 단 몇 년만 사용되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고해상도 화면이 알파벳 루아시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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